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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이 아니라 영토다

AI 시대의 마케팅은 광고를 사는 게 아니다. 버티컬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다. 빅테크가 들어오기 전에 당신의 영토를 먼저 채워라.

들어가며 — 광고가 불안한 이유

Photo by Boitumelo on Unsplash

한때 나는 마케팅을 "도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클릭률. 전환율. ROAS. 우리는 숫자를 최적화하는 게 마케팅이라 배웠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팔리도록. 이 방정식이 마케팅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 생각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장하는 서비스는 보통 이런 패턴을 따른다. 초기에는 바이럴이나 입소문으로 사용자가 유입된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광고를 돌리기 시작하고, 광고가 효과를 보이면 예산을 늘린다. 예산을 늘릴수록 사용자도 늘어난다. 그렇게 광고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 다음에 온다.

광고비를 잠깐 줄이면 유입이 뚝 끊긴다. 경쟁사가 같은 키워드에 입찰을 시작하면 CPC가 오른다. Meta나 Google이 알고리즘을 바꾸면 ROAS가 흔들린다. 플랫폼이 정책을 바꾸면 광고 소재가 거부된다. 우리는 플랫폼 위에 집을 지었는데, 그 땅이 우리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광고 의존형 마케팅의 구조적 취약점이다. 우리는 사용자에게 도달하는 비용을 계속 지불하고 있지만, 그 채널을 소유하지 못한다.

이 전자책은 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마케팅 패러다임을 다룬다. 광고 최적화가 아니라 영토 점령. 도달이 아니라 생태계. 그리고 AI가 이 전환을 지금 당장 가능하게 만든 이유를 9개의 챕터로 풀어낸다.


1장. 경제적 해자: 버핏이 발견한 원리

해자란 무엇인가

워렌 버핏은 투자할 기업을 고를 때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해자는 중세 성 주변을 둘러싼 물길 — 외적이 쉽게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어선이다. 경제에서 해자는 경쟁자가 당신의 시장 지위를 빼앗지 못하게 막는 구조적 우위를 뜻한다.

버핏이 Coca-Cola에 투자한 이유는 맛이 좋아서가 아니다. 100년에 걸쳐 구축된 전 세계 유통망, 병입 파트너십, 브랜드 인식이 모든 신규 진입자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맛있는 콜라를 만들어도 Coca-Cola를 대체하기 어렵다. 제품의 우위가 아니라 시스템의 우위가 해자다.

해자의 네 가지 형태

경제적 해자는 크게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원가 우위(Cost Advantage): 경쟁자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 Amazon이 물류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모가 커질수록 배송 단가가 낮아지고, 낮아진 단가가 더 많은 판매로 이어지고, 더 많은 판매가 단가를 더 낮춘다.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제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구조. LinkedIn이 대표적이다. 연결된 직장인이 많을수록 구직자에게도, 채용 담당자에게도 LinkedIn의 가치가 높아진다. 뒤늦게 진입한 경쟁자는 이 네트워크를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전환 비용(Switching Cost): 다른 서비스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과 불편함. Salesforce가 가장 잘 설명되는 사례다. 전 세계 영업팀이 Salesforce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계속 쓰는 이유는 거기에 쌓인 10년치 고객 데이터와 영업 이력, 팀원들의 습관을 옮기기가 너무 힘들어서다.

무형 자산(Intangible Assets): 브랜드, 특허, 규제 허가 등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 Pfizer의 특허, Rolex의 브랜드, 은행의 금융 라이선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케터가 놓친 것

마케터들은 버핏의 투자론을 읽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마케팅 자체도 해자가 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 AI 시대의 마케팅은 해자를 만드는 행위 그 자체여야 한다. 광고는 "도달"이다. 해자는 "점령"이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다.

광고를 잘 돌리면 사용자가 온다. 하지만 광고를 멈추면 사용자도 멈춘다. 해자는 다르다. 한번 구축되면 경쟁자가 진입하기 어렵게 만들고, 기존 사용자가 떠나기 어렵게 만든다. 광고는 유량(Flow)이고, 해자는 저량(Stock)이다.


2장. AI가 바꾼 생산 비용의 방정식

왜 예전에는 광고밖에 없었는가

광고 기반 마케팅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콘텐츠를 만들고 도구를 개발하려면 사람이 필요했고, 사람은 비쌌다. 작은 팀이 수십 개의 버티컬 미니 툴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블로그 포스트 하나를 쓰는 데 반나절, 랜딩 페이지 하나를 만드는 데 일주일, 간단한 계산기 툴 하나를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이 제약 조건 안에서 광고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유입을 만들기 위해 콘텐츠를 쌓는 것보다, 광고를 사서 사람을 데려오는 게 훨씬 빠르고 예측 가능했다. 그래서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직군이 생겼고, ROAS가 마케터의 핵심 지표가 되었다.

AI가 바꾼 것

AI가 이 방정식을 완전히 바꿨다.

콘텐츠 생산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고 있다. Claude나 GPT를 활용하면 전문적인 블로그 포스트를 2시간 안에 퍼블리시할 수 있다. 간단한 웹 도구 하나를 만드는 데 이제 하루에서 사흘이면 충분하다. 계산기, 체크리스트, 서식 생성기, 분석 도구 — 예전에는 엔지니어링 팀이 스프린트를 2~3번 써야 했던 것들을 이제 마케터가 직접 AI와 협업해서 만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

작업 이전 AI 시대
블로그 포스트 1편 4~8시간 1~2시간
랜딩 페이지 1개 3~5일 반나절~1일
계산기 툴 1개 2~4주 2~5일
체크리스트 생성기 1~2주 1~2일
서식 자동화 도구 1~3개월 1~2주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빨라졌다"가 아니다. 전략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략의 전환

예전에는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 광고비보다 비쌌다. 지금은 반대다. 미니 툴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 동등한 트래픽을 광고로 사는 비용보다 훨씬 낮아졌다. 그리고 그 미니 툴은 한번 만들면 계속 작동한다. 광고와 달리 비용을 멈춰도 사라지지 않는다.

생산 비용이 무너지면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제약이 사라졌는데도 과거의 전략을 쓰는 건 비효율이 아니라 실패다.


3장. 버티컬이란 무엇인가

버티컬의 정의

마케팅에서 "버티컬(Vertical)"은 특정 산업이나 사용자 세그먼트에 특화된 영역을 뜻한다. 수평적(Horizontal)이 넓고 얕다면, 수직적(Vertical)은 좁고 깊다.

Google은 수평적이다. 모든 정보를 다룬다. 반면 PubMed는 수직적이다. 의학 논문이라는 버티컬만 다룬다. Shopify는 이커머스라는 버티컬에 집중한다. Veeva는 생명과학 CRM이라는 더 좁은 버티컬을 장악했다.

버티컬이 좁을수록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사용자의 마찰점을 정확히 알게 된다. 마찰점을 정확히 알수록 해결책이 정교해진다. 이것이 버티컬 집중의 힘이다.

버티컬의 크기를 어떻게 잡는가

버티컬이 너무 넓으면 생태계를 채우기 어렵다. "마케터" 전체가 버티컬이라면, 그 안의 모든 마찰점을 해결하기 위해 수백 개의 툴이 필요하다. 반대로 너무 좁으면 사용자 수가 적어 영향력을 키우기 어렵다.

적절한 버티컬의 크기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사용자 수: 버티컬 내 잠재 사용자가 최소 수천 명 이상이어야 한다. 너무 좁으면 생태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공통 마찰점: 버티컬 내 사용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가 5개 이상 존재해야 한다. 마찰점이 너무 적으면 생태계를 채울 수 없다.

반복성: 그 마찰점이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반복될수록 습관이 형성되고, 습관이 형성될수록 전환 비용이 높아진다.

버티컬 예시

몇 가지 버티컬과 그 내부 마찰점을 살펴보자.

전자연구노트 (연구자 버티컬)

  • 연구비 계산 및 집행 관리
  • IRB 심의 서식 작성
  • 논문 작성 및 참고문헌 관리
  • 공동 연구자 협업 및 데이터 공유
  • 연구 성과 보고 및 정산

스몰 비즈니스 회계 (소상공인 버티컬)

  • 매출/지출 기록
  • 세금 신고 준비
  • 인보이스 발행
  • 재고 관리
  • 직원 급여 계산

인테리어 시공 (건설업 버티컬)

  • 견적서 작성
  • 자재 수량 계산
  • 시공 일정 관리
  • 하자 보수 이력 관리
  • 고객 포트폴리오 관리

각 버티컬에는 핵심 제품(메인 SaaS)이 있고, 그 주변에 10~20개의 마찰점이 있다. 이 마찰점들이 미니 툴의 소재다.


4장. 마찰점 지도 만들기

사용자 하루를 따라가라

버티컬을 정했다면 다음 단계는 마찰점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마찰점이란 사용자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불편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실수를 유발하는 모든 지점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용자의 하루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을 "Job Day" 인터뷰라고도 한다. 사용자에게 "지난 목요일 오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뭔가요?"부터 시작해서, 하루 동안 한 일의 순서를 상세히 물어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찰점이 드러난다.

직접 인터뷰가 어렵다면 커뮤니티를 관찰하라. 해당 버티컬의 Reddit, 카카오톡 오픈채팅, 네이버 카페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어떤 문제로 불만을 털어놓는지 보인다. "엑셀로 이걸 하고 있는데 자동화할 방법이 없나요?" — 이런 질문이 마찰점의 신호다.

마찰점 분류법

마찰점을 발견했다면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한다.

발생 빈도: 이 마찰점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 매일 발생하는 것이 월 1회 발생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

해결 난이도: AI 툴로 얼마나 빠르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가? 난이도가 낮을수록 먼저 만들어야 한다.

핵심 제품 연관성: 이 마찰점을 해결하면 핵심 제품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가? 연관성이 높을수록 전환 효율이 좋다.

이 세 가지를 3×3 매트릭스로 만들어보면,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미니 툴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전자연구노트 사례: 마찰점 지도 전체

전자연구노트를 예로 들어 마찰점 지도를 완전히 그려보자.

연구자의 하루를 따라가면 이런 마찰점들이 나온다.

과제 시작 단계

  • 연구비 예산 수립: 간접비율, 인건비 계산이 복잡해서 매번 엑셀로 직접 계산
  • IRB 서류 작성: 기관마다 양식이 달라서 매번 처음부터 작성
  • 공동연구 협약서 초안: 법률 용어가 많아서 매번 법무팀에 요청

연구 진행 단계

  • 실험 노트 기록: 손으로 쓴 노트를 디지털로 옮기는 이중 작업
  • 데이터 버전 관리: 파일명에 날짜 붙이는 방식으로 관리해서 혼란
  • 팀원 간 데이터 공유: 이메일이나 USB로 주고받아서 최신 버전 파악 어려움

보고 및 정산 단계

  • 중간 보고서 작성: 양식 찾고 내용 정리하는 데 이틀 소요
  • 연구비 정산: 영수증 분류 및 증빙 취합에 매 분기 1주일 투입
  • 논문 참고문헌 정리: 인용 스타일마다 형식이 달라서 수작업 변환

완료 단계

  • 특허 출원 서류: 기술 명세서 작성 형식이 생소해서 외부 의뢰
  • 연구 성과 보고: 지표 취합 및 시각화에 반나절 이상 소요

10개 이상의 마찰점이 나왔다. 각각이 미니 툴의 후보다.


5장. 전환 비용을 설계한다

전환 비용이란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은 사용자가 현재 서비스를 떠나 경쟁 서비스로 옮길 때 발생하는 총비용이다. 금전적 비용만이 아니다. 시간, 노력, 학습, 데이터 이동, 심리적 불편함까지 포함한다.

전환 비용이 높은 서비스일수록 사용자가 떠나기 어렵다. 이것이 해자의 핵심이다.

세 가지 전환 비용

생태계 전략에서 설계할 수 있는 전환 비용은 세 가지다.

데이터 전환 비용: 사용자의 데이터가 내 시스템 안에 축적될수록 이동 비용이 커진다. 연구비 계산기를 3년 동안 쓴 연구자의 경우, 그 안에 쌓인 과거 과제별 예산 이력, 간접비율 설정, 즐겨 쓰는 템플릿이 모두 전환 비용이 된다. 이것들을 새 서비스로 옮기는 건 가능하지만 귀찮다. 대부분의 사람은 귀찮음에서 멈춘다.

Salesforce가 이것의 교과서다. 전 세계 영업팀이 Salesforce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계속 쓰는 이유는 거기에 쌓인 고객 데이터, 영업 이력, 커스텀 필드 설정을 옮기기가 너무 힘들어서다.

워크플로우 전환 비용: 도구가 팀의 일상 업무 프로세스에 깊이 통합될수록 전환 비용이 커진다. 연구팀이 전자연구노트를 중심으로 회의 → 기록 → 공유 → 보고 워크플로우를 구축했다면,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는 건 도구 교체가 아니라 팀 전체의 업무 방식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네트워크 전환 비용: 다른 사용자들과의 연결이 서비스 가치에 영향을 줄수록 전환 비용이 커진다. 공동 연구자들이 같은 전자연구노트를 쓰고 있다면, 나 혼자 다른 서비스로 옮기면 협업이 끊긴다. 네트워크가 만드는 전환 비용이다.

전환 비용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법

미니 툴 생태계는 이 세 가지 전환 비용을 자연스럽게 높인다.

연구비 계산기(데이터 누적) → 전자연구노트(워크플로우 통합) → 팀 협업 기능(네트워크 연결)의 순서로 사용자가 생태계 안으로 깊이 들어오면, 각 단계마다 전환 비용이 쌓인다. 처음에는 계산기 하나 쓰다가, 어느 순간 팀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경쟁사로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6장. 지저분함의 전략

포커스 없는 게 아니다

이 전략을 처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많은 툴을 만들면 포커스가 없어지지 않나요? 핵심 제품에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것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존 경영 원칙에 익숙해진 반응이다. 그 원칙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다른 원칙이 적용된다.

선택과 집중은 생산 비용이 높던 시대의 원칙이다. 자원이 제한될 때, 선택과 집중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생산 비용이 무너진 세계에서는 다르다. 이제 미니 툴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 과거의 10분의 1 이하다. 이 환경에서 좁게 집중하는 것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

각각의 미니 툴은 독립적으로 동작하지만, 모두 같은 버티컬 안에서 같은 사용자를 섬긴다. 그 사용자가 툴 A에서 툴 B로 이동할 때 자연스럽게 핵심 제품을 발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포커스가 없는 게 아니라, 포커스를 버티컬 전체로 확장한 것이다.

Apple이 이걸 이미 하고 있다

Apple이 iPhone만 만드는 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십 개의 연결된 제품과 서비스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AirPods, Apple Watch, Apple TV, iPad, Mac, iCloud, App Store, Apple Pay, Apple Music, Apple Fitness+, Apple Arcade. 각각은 독립적인 제품이지만, 모두 Apple ID라는 하나의 계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번 이 생태계에 들어오면 모든 기기가 연동되고, 데이터가 공유되고, 결제가 통합된다.

iPhone을 쓰다가 Android로 옮기면 AirPods의 seamless 연동이 사라지고, iMessage 그룹채팅에서 혼자 초록 거품으로 표시되고, Apple Watch가 절반의 기능을 잃는다. 이것이 Apple의 해자다.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해자다.

스타트업도 규모만 다를 뿐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지저분함이 강함이다

겉으로 보면 지저분해 보이는 생태계가 내부적으로는 촘촘하다. 경쟁자가 진입하려면 제품 하나를 따라 만드는 게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재현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 시간 동안 당신의 생태계는 더 깊어지고, 사용자는 더 깊이 통합된다. 경쟁자가 따라올 때쯤 이미 당신의 해자는 더 넓어져 있다.


7장. 빅테크 진입 타이밍을 읽는 법

빅테크는 반드시 들어온다

냉혹한 현실을 먼저 직시하자.

Google, Microsoft, Amazon, Meta — 이들은 이미 수많은 버티컬을 잠식해왔다. 여행 검색(Google Flights), 지역 정보(Google Maps), 부동산(Zillow에 대한 압박), 의료 정보(Google Health), 금융(Google Pay, Apple Pay). 규모가 커지고 전략적으로 중요해진 버티컬에는 결국 빅테크가 들어온다.

전자연구노트 버티컬을 예로 들면, Microsoft는 이미 SharePoint와 Teams로 기업 연구 환경에 침투하고 있다. Google은 Google Scholar, Google Forms, Google Sites를 가지고 있다. Notion은 연구팀의 문서 관리를 파고들고 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집중하기로 결정하면, 작은 서비스들은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여기에 없다.

빅테크가 진입을 결정하는 조건

빅테크가 특정 버티컬에 진입을 결정하는 타이밍을 예측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보통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이 충족될 때다.

시장 규모: 버티컬의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 빅테크의 관심을 받을 만큼 커질 때. 일반적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 이상이어야 빅테크가 자원을 배분한다.

전략적 인접성: 기존 제품과 시너지가 명확할 때. Google이 여행 검색에 진입한 건 검색 광고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Microsoft가 협업 툴에 집중하는 건 Office와의 번들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전환점: 새로운 기술이 버티컬의 판도를 바꿀 때.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업계 전반에 미친 영향이 대표적이다. 빅테크는 이런 전환점에서 기존 강자를 대체하려 한다.

창문이 열려 있는 동안

이 조건들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창문이 열려 있다. 이 창문이 얼마나 오래 열려 있는지는 버티컬마다 다르다. 빠르게 성장하는 버티컬은 창문이 빨리 닫히고, 성장이 느린 버티컬은 오래 열려 있다.

중요한 건 창문이 닫히기 전에 해자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미 해자가 형성되어 있다면, 빅테크가 진입해도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Google이 구인구직 플랫폼에 Google for Jobs를 출시했지만, 이미 구직자와 채용 담당자의 데이터 네트워크를 가진 LinkedIn을 대체하지 못했다. 생태계가 먼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8장. 실전 로드맵: 90일 스프린트

시작은 지금 할 수 있다

이 전략이 큰 기업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AI 덕분에 1인 팀도, 5인 스타트업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90일 스프린트로 생태계의 기초를 놓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개월차: 지도 그리기 + 첫 툴

1주차: 마찰점 지도 작성

당신의 버티컬 내 사용자 5명을 인터뷰하라. 이미 고객이 있다면 기존 고객을, 없다면 잠재 고객을. 인터뷰 질문은 단순하다.

  • "지난 한 달 동안 업무 중 가장 귀찮았던 일이 뭔가요?"
  • "엑셀이나 수작업으로 하고 있는 작업이 있나요?"
  • "이런 게 자동화되면 좋겠다 싶은 게 있나요?"

인터뷰 5개면 충분하다. 공통으로 나오는 마찰점 상위 10개를 정리한다.

2주차: 첫 툴 선택 + 설계

마찰점 10개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 것을 고른다. 기준은 세 가지다.

  •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것
  • 만들기 가장 쉬운 것 (AI로 2주 안에 가능한 것)
  • 핵심 제품과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이 세 가지가 모두 맞는 것을 선택한다.

3~4주차: 첫 툴 개발 + 출시

Claude, Cursor, v0 같은 AI 코딩 도구를 활용해 MVP를 만든다. 완벽할 필요 없다. 핵심 기능 하나만 작동하면 된다. 이것을 버티컬 커뮤니티에 공개한다.

Product Hunt 출시보다 커뮤니티 공유가 더 효과적이다. 해당 버티컬의 카카오톡 오픈채팅, 슬랙 채널, 네이버 카페에 "이런 툴을 만들었는데 써보실 분 계신가요?"라고 올린다.

2개월차: 연결 + 두 번째 툴

5~6주차: 연결고리 설계

첫 툴에서 핵심 제품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설계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CTA다. 툴 사용 완료 후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시다면 [핵심 제품] 를 확인해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띄운다. 더 정교한 방법은 데이터 연동이다. 툴에서 생성된 결과물을 핵심 제품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결이 자연스러울수록 전환율이 높아진다. 억지스러운 CTA보다는, 툴의 결과물을 더 잘 활용하려면 핵심 제품이 필요하다는 구조가 훨씬 효과적이다.

7~8주차: 두 번째 툴

첫 툴의 피드백을 반영해 개선하면서, 동시에 두 번째 툴을 만들기 시작한다. 두 번째 툴은 첫 번째 툴과 같은 사용자가 쓰되, 다른 마찰점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두 툴 사이에도 자연스러운 연결이 있어야 한다.

3개월차: 생태계 확장 + 데이터 수집

9~10주차: 사용 데이터 분석

어떤 마찰점이 가장 많이 해결되고 있는지, 어느 경로로 핵심 제품으로 전환되는지 분석한다. 이 데이터가 세 번째, 네 번째 툴의 방향을 결정한다.

11~12주차: 생태계 랜딩 페이지

개별 툴들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서 보여주는 랜딩 페이지를 만든다. "연구자를 위한 도구 모음"처럼. 이 페이지가 SEO 트래픽을 모으고, 처음 방문한 사용자가 여러 툴을 한번에 발견하게 만든다.

AI 툴 활용 가이드

이 스프린트를 실행할 때 활용할 수 있는 AI 툴들이다.

  • 기획: Claude — 마찰점 인터뷰 분석, 툴 기획서 작성, 사용자 페르소나 정리
  • 개발: Cursor + Claude — 실제 코드 작성, 버그 수정
  • 디자인: v0 — UI 초안 생성
  • 콘텐츠: Claude — 툴 소개 페이지, SEO 블로그 포스트
  • 데이터 분석: ChatGPT with Code Interpreter — 사용 로그 분석

마치며 — 마케팅의 정의를 다시 쓸 때

나는 이제 마케팅을 이렇게 정의한다.

마케팅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 세계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모든 행위다.

광고는 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도 점점 비싸지고, 점점 덜 효과적이 되는 방법.

AI 시대에 마케터의 역할은 달라졌다. 광고 소재를 최적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컬을 읽고 마찰점을 발견하고 생태계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제품 팀과 마케팅 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마케터가 툴을 만들고, 개발자가 사용자 인터뷰를 한다.

이 전환이 불편하다면, 이미 늦고 있는 것이다.

빅테크가 당신의 버티컬에 들어오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 공간을 먼저 채우라. 계산기 하나, 체크리스트 하나, 서식 생성기 하나. 매달 하나씩 추가하면 1년 후에는 12개의 마찰점을 해결하는 생태계가 완성된다.

영토를 먼저 점령하는 자가 해자를 갖는다.

해자를 가진 자가 오래 살아남는다.

광고를 더 잘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영토를 먼저 채우는 사람이 AI 시대의 마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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